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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까요/시집

[책 리뷰] 이시영 시집 "나비가 돌아왔다"

by fakcold 2022. 11. 18.

"나비가 돌아왔다" - 이시영

 

서문

 

시골집 할아버지 방을 둘러본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물건은 없습니다. 기억나는 얼굴도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작고하셨으니까요.

 

그런데

기억나는 냄새는 있습니다.

그것은 구수하고요, 또 깊었습니다.

 

작가 - 이시영
약력 

º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º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월간문학」 신인작품 공모 당선

시집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은빛 호각」,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호 야네 말」, 「하동」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
º 산문집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시 읽기의 즐거움」

º 1980년 창작과비평사 편집장으로 입사, 23년 근무
º 2006년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재직

º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훈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임화문학상 수상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고, 같은 해 『월간문학』 신인작품 공모에 시를 발표한 이래 50년 넘게 꾸준한 시력을 일궈온 시인 이시영의 열다섯 번째 시집 『나비가 돌아왔다』(문학과 지성사, 2021)가 출간되었다. 신간으로는 4년 만이며, 문학과 지성 시인선에 시집을 보탠 지는 27년 만이다. 그간 시인은 출판사 창비에서 편집장, 주간, 부사장 등을 맡아 일하였고, 5년 전부터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대체로 단상을 스케치하는 짧은 시편들이 많으나 그 안에 통렬한 세계 인식과 준엄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 출처 : 교보문고 책소개 -

 

 

"어제의 밤이 결코 괴롭고 긴 것만은 아니었다"

 

추천 구절

 

"나는 박꽃이 있는 여름 시골집이 좋았다
박꽃은 넝쿨을 타고 올라가 초가지붕 위에 커다란 박들을 굴렸다
가을이 오면 저것들을 푹푹 삶아진 뒤 속이 텅 빈 바가지가 되어
겨우내 정지간 시렁 위에서 덩그렁덩그렁 울릴 것이다"

- p.41 "박꽃" -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재재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긋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

- p.91 "듣는 사람" 中 -

 

"목화밭 사잇길로 걸었네
가지 않은 길
목화밭 사잇길로 걸었네
아직 오지 않은 길
목화밭 사잇길로 걸었네
끝내 사라지지 않을 길"

- p.59 "목화밭" -

 

[리뷰]

난해함 : ☆ (누구나 편하게 읽기 좋습니다)
한 줄 평 : 가늠할 수 없는 깊이. 연륜이란 이런 것인가.

 

시 이야기

 

  깊은 사람은 내뱉는 모든 것이 깊습니다. 한마디의 말부터 내뱉은 숨까지도. 그래서 명절날 어르신들은 말수가 없으신가 봅니다. 얕은 100마디보다 속까지 깊은 한마디가 더 와닿으니까요.

 

  이 시집에서는 시골집 냄새가 납니다. 구수한 단어와 담담한 어투. 가끔 모난 소리를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지만, 진정 그 의미를 깨닫기란 늘 어렵습니다. 그저 헤아릴 뿐입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와닿는 글을 보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예쁜 카페, 유행하는 음식점을 줄까지 서가며 다녀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사람이 많은 곳은 싫다, 예쁜 장소에 가봤자 무엇이 남겠느냐는 말을 하시던 부모님이 너무 행복해하셨다고 말합니다. “부모님도 예쁜 카페 좋아합니다, 줄 서서 먹는 식당도 좋아하시고요.”

 

  "이제는 없는 듯이 있는 조용한 바다가 좋더라.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가 거품처럼 슬며시 숨죽이는 곳. 월송정 지나 손등이 거뭇한 할머니가 제철 방어회를 떠 주는 횟집이 있는 곳. 여기에서 독도가 제일 가깝다고 하더라. 그러나 오늘은 돛배도 없고 그곳으로 부는 바람도 없어라.

···

이제는 겨우 발밑이나 적시다가 고개 숙이며 물러날 줄 아는 겨울 바다가 나는 좋더라."

- p.52 "후포" 中 -

 

  쉽게 읽히는 이 시집은 어쩌면 저와 같은 젊은 세대가 읽기에, 그 어떤 난해한 시보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언어로 이루어진 시니까요. 하지만 시집 속에 언젠가 우리가 여쭙게 될 질문과 그 답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시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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