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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까요/시집

[책 리뷰] 허연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by fakcold 2022. 11. 19.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허연

 

서문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도망칠 수 없던 이유는

행복과도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작가 - 허연
약력 -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 수상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 출간
          현대문학상, 시집작품상 수상

데뷔 30년,
허연은 이제 허연의 이야기를 한다
올해 데뷔 햇수로 30년을 맞은 시인 허연의 다섯번째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1990년대 초입, 「권진규의 장례식」 외 일곱 편의 시로 현대시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장한 허연은 도시생활자 개인의 욕망과 공포를 선명하게 보여주며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렸다. 1995년 그의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가 나온 뒤 “해설을 쓴 평론가는 죽었고 시를 쓴 시인은 사라졌다”라는 소문이 오래도록 무성했고, 수많은 불온한 청춘들이 이 시집을 필사하며 허연을 앓았다. 그가 13년의 긴 침묵을 깨고 두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로 시단에 돌아온 이후에는, 시인 특유의 젊고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와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까지 연이어 화제작을 출간했다. 이 여정에 대해 시인은 이번 시집 발문을 쓴 시인 박형준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술했다.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는 소주병을 깨서 세상의 옆구리를 한번 찌르는 심정으로, 두번째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돌아온 탕자처럼 내가 다시 시로 돌아왔다는 선언, 세번째 『내가 원하는 천사』는 이제 시와 대결하지 않고 시를 끌어안겠다는 화해, 네번째 『오십 미터』는 내가 결국 시 속에서 살았구나 하는 포기였지. 이번 시집은 시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세상에 그냥 있었던 거구나 하는 인정…… (p. 151)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를 통해 세계를 감각하고 발견한다. 생활 속에서 어른대는 시, 자연스러운 시들이지만 그의 감각은 여전히 날카로워서 사물의 핵심을 간파해낸다. 한없이 허무로 뻗어온 허연의 시였지만 그 중심은 결국 이 세계의 낮고 비루한 땅 위에 있었다. 더러운 거리와 가난한 사람들, 병듦과 죽음을 한껏 끌어안고 북회귀선으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시인. 그가 이제 더욱 진솔하고 담백한 언어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허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시집이 가닿을 당신에게 노래 될 시간을 마련하며

- 출처 : 교보문고 책소개 -

 

 "제외된 자들의 눈부심을 알았다. 절창은 제외된 자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추천 구절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쉽다
날아오르는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 p.12 "트램펄린" 中 -

 

"눈을 떠보니 북해였다
이별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두고 온 건 모두 얼어버렸고
나는 백야의 노래를 부르다 울어버렸다
저주했던 것들을 그리워하는 이 취향"

- p.50 "북해" 中 -

 

"장마철에는 생각도 따라 젖는다.

제방 너머, 그대는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찍 나온 별이 그대가 걸어간 점선을 알려주지만, 부질없고 가엾다 우린. 앞질러 고해를 해버린 그대도, 언제나 죽어가는 꿈만 꾸었던 나도."

- p.57 "어느 사랑의 역사" 中 -

 

[리뷰]

난해함 :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편하게 읽기 좋습니다)
한 줄 평 : 잔잔한 비와 같은 시집. 있는 듯 없는 듯, 눈을 떠야만 볼 수 있다.

 

시 이야기

 

  북적이던 거리를 무심코 홀로 걸을 때, 알 수 없는 불안을 경험한 적 있으신가요. 또한 매번 사람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지하철 열차에 홀로 남겨졌을 때, 이상한 공포심이 밀려오진 않았나요. 이렇게 익숙함 속의 부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 공포를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라고 부릅니다. 직역하면 "문턱의 공간"이며 "전이 공간(轉移空間)"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경험상 있어야 할 것들이 부재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공포를 뜻하는 것입니다. 좀비 영화나 각종 공포물에서 행인이 사라지고 쓸쓸한 바람만이 부는 시가지를 자주 비춰주는 이유가 이 리미널 스페이스를 의도하기 위함이기도 하죠.

 

  이 시집이 비추는 세계는 매우 일상적입니다. 전철역, 식당, 성당, 집 등. 이렇게 일상적인 배경이지만, 그의 세계에는 있어야 할 것이 부재하고 없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식당에는 사람이 없고 지하철에는 나비가 있는 식입니다. 또한 행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슬픔이 자리하기도 하고 슬픔이 있어야 할 자리를 행복으로 가득 채워 넣는 식입니다. 

 

"나를 소식에서 떼어놓기 위해 나는 오늘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넷이 앉는 자리에서도 여섯이 앉는 자리에서도 나는 늘 혼자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어느 날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소식이 소화되지 않는 불내성증에 걸린 것이다

내려놓은 젓가락과 식탁의 끝선을 맞추며
뿌리채소와 카레라이스를 씹는다"

- p.36 "식당" 中 -

 

  과거 책에서 공포와 기쁨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구절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행복에서 단 한 발 내딛으면 공포가 되는 것이고 공포에서 단 한 발 달아나면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시집을 읽는 내내 그의 세계 속에서 내딛고 달아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시집을 덮을 땐 벅찬 감정을 느꼈고, 많은 독자들이 그것을 경험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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