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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까요/시집

[책 리뷰] 이지아 시집 "이렇게나 뽀송해"

by fakcold 2022. 11. 18.
"이렇게나 뽀송해" - 이지아

서문

 

흠뻑 젖은 몸으로, 시인은 말한다.

이렇게나 뽀송하다고. 뽀송해지기를 택했다고.

 

작가 : 이지아
약력 :

º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희곡 부문) 수상
º 2015년 쿨투라 신인상(시 부문) 수상
º 시집 「오트 쿠튀르」 출간
º 2022년 박상륭 상 수상

 
“너가 좋아하는 거, 그게 될 거야”
경쾌하고 능청맞게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

2022년 제4회 박상륭상 수상작 수록
‘비극을 가지고 노는 시인’ 이지아 두번째 시집 출간
  억압, 고정관념, 폭력, 이런 고집쟁이 아이들의 너저분한 머리를 밀어주기 위해 저는 오랫동안 외로웠고 무서웠고 어려웠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개념과 시의 범주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마음껏 쓰고 싶었습니다.
  -이지아, 박상륭상 수상 소감에서

시 바깥의 시를 쓰는 이지아의 두번째 시집 『이렇게나 뽀송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오트 쿠튀르』(문학과지성사, 2020)를 통해 “층층이 포개어지고 요동치면서 무한을 향해 끊임없이 질주”(조재룡)하는 세계를 선보인 후 2년 만이다. 전위의 상징 ‘오트 쿠튀르’를 내세웠던 전작과 달리 이번 시집은 제목 “이렇게나 뽀송해”에서 드러나듯 한층 경쾌하고 능청맞은 얼굴로 시의 중심과 경계를 해체한다. 5부로 나뉜 77편의 시를 엮었으며, 수록 작품 중 「반생물을 향한 빵과 칩과 계」 외 13편은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자신만의 야멸찬 언어로 사정없이 내지르는 자유로운 광기”라는 찬사와 함께 2022년 제4회 박상륭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지아는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부문과 2015년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으로 데뷔한 이래, 희곡과 시의 발판 위에서 극시(劇詩) 장르를 개척하며 한국 시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시집을 읽는다면 공연을 전제로 한 시극(詩劇)이 아닌 극시의 형식에서 태어난 낯선 목소리를 주목함 직하다. 모종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순간 섣불리 규정되기를 거부하며 도망가는 시편들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출처 : 교보문고 책 소개-

 

"죽는다는 건 심심해지는 일인가요"

 

추천 구절

 

"여보를 즐겁게 할 방법을 알고 있지만 아끼겠소

윗배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줄거리인데
여보, 저는 묘목을 하나 임신 중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내가 입던 하와이안 셔츠를 걸치고 있는 게요?
여름에 여름을 쌓아도 이쪽을
보아주지 않으셔요"

- p.148 "상황극" 中 -

 

"언젠가 대신 보여줄 게 있다면서 새가 깊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호수가 살아 있는 걸 봐야 하니까. 신경질의 비슷한 말은 별과 땀띠들의 애처로운 시도처럼



열기구는 다정하게 끄적거릴 펜을 주었다가 가져간다. 그런데 엄마, 눈을 감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눈을 감으면 눈사람이 되지, 하얀 물고기를 바닥에 쏟으면 어항을 더듬는 자가 되어버리고"

- p.83 "입체성" 中 -

 

"비가 내리는 날은 그러했다
농도 짙은 소리와 습기와 우산과 손의 호응
키스와 침묵의 효과
주인공이 없어도 멋진 풍경

기도가 없는 성당은
진짜로 천국 같아
안나가 손을 모았다"

- p.257 "회전하는 편지" 中 - 

 

[리뷰]

난해함 : ★★★★ 

한 줄 평 : 불쾌한 유년의 하루. 경쾌하지만 무겁다.

 

시 이야기

 

  시는 참 어려운 장르입니다. 때때로 한 걸음 떨어져야 가까워지고 소설을 읽듯 가볍게 훑어야 무게감을 가지며, 또 어떤 때는 능청스럽게 대해야 비로소 진지해집니다. 빠르게 좇는 독자와 경쾌하게 도망치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어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 시집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시를 읽으며 주목해야 할 것은 문장에 대한 해석과 연결성이 아닙니다. 그저 단어로 이루어진 거대한 호수의 형식과 그 속에서 재빠르게 건져 올린 감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감정은 대개 미끌미끌한 물고기 같아서 꽉 쥐지 않으면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기 쉽습니다. 또한 형식은 늘 봐왔던 친숙한 것이기에 쉽게 간과해버립니다.

 

  물론 시의 모든 유형에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다만 어렵게 느껴지는 시를 읽을 때 이 기본적인 원칙을 지킨다면, 시는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무게감을 가질 것이며 비로소 진지해질 것입니다. 이 시집은 우울한 감정을 경쾌한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시에 친구 혹은 가족과 연관된 갖가지 사건과 관계가 여럿 등장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사건은 시의 사소한 톱니가 되고 관계는 우울함이라는 아귀로 일련의 사건들과 절묘하게 맞물려 경쾌하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탈선이나 고장 없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계획이 잘 짜인 여행을 한 느낌을 받았고 유독 기억나는 풍경이 많은 시집이었습니다.

 

"살로 살로 대 뱀은 장갑 속에 들어갔습니다.
  베이지색 목장갑 속에 들어가 물을 끓였습니다.
  꽃게와 꽃다발, 살로 살로 대 뱀은 한국어 연습을 합니다.
  꽃게와 꽃다발, 아랍어 연습을 합니다.
  살로 살로 대 뱀은 애인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애인의 소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벽이 허물어진 것을 지켜주기 위해 살로 살로 대 뱀은 온몸으로 빈 공간을 채웠습니다.
  (에구, 마무리했어.)
  살로 살로 대 뱀은 허기지고 숨이 차서
  긴 혀로 치즈 삼키고 오이 삼켰습니다."

- p.156 "저 앞의 썰매 그룹"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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