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캔터빌의 유령", "행복한 왕자"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1800년 당대 최고의 스타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동성애로 인한 수감 생활과 함께 한 순간에 몰락하게 되고 이때 쓴 편지를 모아 "심연으로부터"라는 옥중기를 출판합니다.
"심연으로부터" / 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는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혐의로 옥 생활을 하며 그의 연인에게 쓴 편지입니다. 분명 연인에게 쓰는 편지인데 글을 읽어보면 러브레터보다 청구서에 가깝습니다. 추억보다는 원망이, 그리움보다는 노여움이 서려있으니까 말입니다.
순수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연하의 애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줬습니다. 하지만 애인은 그의 열렬한 사랑에 친절함으로 보답하지 않았죠. 순진한 배려들은 의무감으로 변질되어 그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또한 상대는 고마워하기는 커녕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때, 와일드는 이미 손을 쓸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성공한 예술가로서 마땅히 누렸어야 할 고결함, 돈, 명예를 거짓된 사랑에 헌납해버리고 남은 것은 서슬 퍼런 쇠창살 아래 무기력한 육체뿐이었으니까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사랑했던 만큼 책 속에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억누르고 또 짓누른 손끝의 떨림이 글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죠. 철면피를 두른 상대에게 냉담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원망과 좌절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자칫 속되게 표현해 찌질해 보일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오스카 와일드답게 모든 문장에 아름다움과 고고함이 묻어 있습니다.
좋은 구절
"당신의 삶과 나의 삶, 과거와 미래, 씁쓸함으로 바뀐 달콤한 것들, 그리고 기쁨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씁쓸한 것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이 편지 속에는 당신의 오만함에 깊은 상처를 낼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자주 나올 거야.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당신의 오만함을 완전히 죽여버릴 때까지 편지를 읽고 또 읽기를."
"피상적인 것은 최고의 악덕이야. 뭐든지 깨닫는 것은 옳은 것이고. 당신이 내 편지를 읽으면서 느끼는 괴로움보다 그것을 써 내려가면서 느끼는 내 고통이 훨씬 크다는 것도 알아야 할 거야"
"하지만 내 잘못은 당신과 헤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과 너무 자주 헤어졌다는 거야"
"당신은 나를 철저하게 홀로 내버려 두었지. 보살펴주지도, 같이 있어주지도 않았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어. 난 지금 포도나 꽃, 멋진 선물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야.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지."
"고통은 계절처럼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린 다만 그 다양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 순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라고. 우리에게 시간은 전진하는 게 아니야. 순환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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