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 안미린
서문
두렵지만 간직하고 있는 것. 지우려 해도 더욱 선명해지는 것. 너무나 선명해서 눈이 아려오는 것.
우리에게 유령이란, 슬픈 기억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 - 안미린
약력 -
º 서울 출생
º 2012 「세계의 문학」 신인상 수상
º 시집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 출간
이번 시집은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유령’이라 불리는 존재가 시집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안미린의 시들은 종이를 접었을 때 모양을 알 수 있는 도면처럼, 사방으로 펼쳤을 때 전체를 볼 수 있는 지도 접책처럼, 서로 포개졌다가 다시 열리기를 반복하며 더듬더듬 나아간다. ‘유령’이 등장하는 시구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하나의 형태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시인은 쌓아 올리지만 구축되지 않는 것들, 구축되지 않기에 허물어지지도 않는 미지의 존재에 곁을 내주고, 그를 감각하는 데에 온 힘을 다한다. 더불어 이 시집에서는 별도의 해설을 싣는 대신 유령이 출몰하는 시구들을 모아 색인 형태의 글 「찾아보기-유령류」를 덧붙였다.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을 가늠해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마련해둔 길라잡이이다.
-출처 : 교보문고 책소개-
"투명하다는 말을 넘어서고"
추천 구절
"먼저 도착하기 없는 미래였는데
누가
새가
새가 출발하는 정서는 발에 있구나
기분을 움켜쥐고 날아왔구나
새가 알을 품고 마음이라 생각했다면
작은 발등 위에 내려놓은 감정이라면"
- p.51 "비 미래" 中 -
"쌀가게 딸 같기도
설탕 가게 아들 같기도 한 아이가
눈사람의 심장을 만들었다
눈사람의 무릎도 만들었다
심장과 무릎 사이에
시간의 틈처럼 잘 닫힌 흉터가 있었다
심장과 무릎으로 된 눈사람이
이 계절을 기억하듯이
심장과 무릎이 이 세계를 기억하듯이"
- p.90 "부러진 모래시계 속에 먼 눈이 쌓이는 눈먼 방음" 中 -
"꿈속에서 인사를 나누었지만, 꿈 밖에서도 인사를 나누었던 것.
타인의 미래를 기다리면 다시 겨울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걷는 꿈속 습관으로
꿈속까지 따라오는 장소를 부드럽게 뒤집을 수 있었다.
꿈속에서 눈을 감으면, 동면에서 이르게 깬 것 같았다."
- p.102 "❅" 中 -
[리뷰]
난해함 : ★★★★☆ (시가 낯설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 줄 평 : 투명한 세계의 투명한 말들. 쉽게 쥐어지지 않으나, 느껴지는 것이 있다.
시 이야기
슬픔에 쉽게 곁을 내어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몸이 지치고 정신이 맑지 못할 때처럼. 그것은 저항할 겨를조차 없이 불쑥 턱밑까지 차오르곤 합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주머니 속 기운마저 빼앗아갈 때까지, 움켜잡힌 소매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떠날 생각을 않죠. 이 시집 곳곳에는 유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글을 읽어나가며 초반부 다소 지엽적인 흐름에 우리가 유령과 그리 가깝지 않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반부부터 유령은 일순간 우리의 근처까지 도달합니다. 투명한 유령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숨통이 조여질 때까지 전혀 눈치챌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에게 유령은 슬픔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태도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들이닥친 유령에 집중하지 않을뿐더러, 또다시 사색하고 고뇌합니다. 그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좇을 뿐입니다. 이러한 반응이 시인의 너그러운 성격 탓일 수도 슬픔에 통달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미린 시인이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그저 곁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의 화분처럼. 탁자에 올려둔 사과 한 알처럼.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이 있듯, 슬픔은 슬픔이고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별개입니다. 슬프다고 해서 아름다움은 절대 추한 행색으로 전락하지 않으며, 다만 나의 감정이 시야를 탁하게 만들 뿐입니다. 슬픔이 다가왔을 때.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외부에 혹은 내 안에 있을지 모를 더욱 아름다운 것을 찾아 나서보는 것을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작은 돌을 주웠던 것뿐인데, 주번이 조금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텅 빈 주머니에 흰 돌을 넣고 걸었다. 물가를 따라 내려가면 물기가 도는 운석들, 해골을 닮은 물형석, 잠든 새 형태의 화석과, 연한 준보석
짙어지는 안갯속에서 반걸음 더 가까운 곳. 수면에 비치는 얼굴을 모아두는 곳. 첫 천사처럼 두 눈 감는 법을 몰라서 먼 잠을 이루는 곳. 가라앉는 쪽에서 머리에 이고 있다는 작고 아름다운 돌."
- p.61 "유령계 2"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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