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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까요/시집

[책 리뷰]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by fakcold 2022. 11. 20.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 김행숙

 

서문

전작 "에코의 초상"에 이어 김행숙 시인만의 독특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함 속에 웃음이 피어나고, 화목함 속에 슬픔이 피어나는.

 

작가 - 김행숙
약력 - 1999년 「현대문학」 시 발표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출간

“나는 당신이 꾸는 꿈을 꾸고 싶다”
자신의 언어와 존재를 모두 내걸고
당신의 말과 꿈에 다가가는 김행숙의 시 쓰기
올해로 데뷔 21년 차를 맞는 김행숙의 여섯번째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지성사, 2020)가 출간되었다. 2000년대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온 미래파의 대표 시인 중 하나였던 김행숙은 그간 과감한 시적 실험과 예술을 향한 끈질긴 질문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오랜 지지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성취와 역할을 인정받아 미당문학상, 노작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행숙은 유연하고 변주되는 형상들의 세계, ‘녹아내리는 얼굴’과 ‘반사되는 메아리’에 집중해온 시인이기도 하다. 온전히 완성될 수도, 완벽히 새로울 수도 없는 불가능한 글쓰기의 숙명을 마주한 채 ‘진정한 말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모색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심부름꾼 k가 내놓은 이야기들’로 자신의 고민을 구체화해낸다. 카프카, 괴테, 배수아, 기형도 등의 여러 텍스트가 김행숙의 시 속에 직접 들어온 듯하지만, 마치 시인의 기억 바구니에 담겨 한참 동안 깨지고 번져나간 듯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모해 천연덕스럽게 전개된다. “가짜에 가짜가 거듭 반사되는 거짓말의 세계”이지만, 그것이 “우리 세계의 진짜 모습”(문학평론가 박슬기)임을 보여주는 시인. ‘문학’이라는 수수께끼를 앞에 놓고 해답을 구하기보다는 질문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를 밀고 나가는 김행숙은 그렇게 우리가 잘 아는 낯선 이야기를 잔뜩 들고 심부름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 출처 : 교보문고 책소개 -

 "이야기가 그릇이라면 깨진 이야기가 있었다."

 

추천 구절

 

  "요즘 도시 아이들은 구멍가게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라지만 걔들도 크면 저마다의 구멍가게를 가슴에 품겠지요. 그러려고 아침밥도 먹지 않고 부리나케 학교로 가는 거겠죠.

아아, 다 감긴 테이프처럼 똑같은 노랫말로 되돌아오는 것이 정녕 아침의 속성이란 말입니까?"

- p.32 "낮부터 아침까지" 中 -

 

"극장에서 지루한 영화를 중간중간 졸면서 보는 기분이야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그림자는 살아 있어
  영화보다 영화 같다는 게 뭘까
  그림자는 무게가 없으니 바람이 불면 제일 먼저 날아가야 하지 않을까"

- p.64 "그림자가 길다" 中 -

 

"오른손에 있는 것을 왼손에 옮길 수 있지
우리는 그렇게 흔들흔들 바구니를 손에 들고 산책을 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어
오늘은 4월의 금빛 햇살이 넘실거리네
달걀 껍질 같은 것
막 구운 빵 냄새 같은 것
실오라기가 남아 있는 단추 같은 것, 눈동자 같은 것,
그것은 누구의 가슴을 여미다가 터졌을까"

- p.105 "봄날은 간다" 中 -

 

[리뷰]

난해함 :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편하게 읽기 좋습니다)
한 줄 평 : 희뿌연 창가에 서 있는 기분. 습하고 찝찝하다.

 

시 이야기

 

  저는 미식가가 아닙니다. 살면서 음식 맛으로 불평을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어느 메뉴를 고르던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는 더러 만족하는 편입니다. 평이 좋지 않은 식당이나 무작정 들어간 식당이나 그 어디에서든지 말입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주변 친구들은 맛이 없다고 가지 않던 쌀국수 가게를 저와 입맛이 비슷했던 한 친구와 거의 매주 애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주변에서의 반응은 대개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하거나 식당을 조금 더 폭넓게 여러 곳 다녀보라는 권유를 듣곤 합니다.

 

  그렇다고 혀가 둔한 것은 아닙니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 음식 맛이 변하면 어떤 재료가 추가되었는지, 또 어떤 재료가 빠졌는지 알아맞히기도 하니까요. 사실 예민하다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최근에는 음식을 먹으며 맛이 어떻든 습관적으로, 학습적으로 맛있다고 생각하게끔 뇌에 주입이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의심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뭐든 맛있다고 생각하기에는 혀가 예민하고 그렇다고 그간 먹어온 음식들이 정말 맛이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그저 미식가가 아니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습관적인 만족일지라도, 남들이 불평하는 식당에서도 저는 적당한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들은 불행을 얻고 가는 곳에서조차 저는 행복감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이죠. 

 

"우산을 두고 갔네. 걘 늘 정신이 없지. 그 대신 매일같이 체중계에 올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제 무게를 달아본다고 해. 조금 빠지고 조금 찐다고 해도 살이야말라 존재의 확고한 고정점이지. 그래서 우린 살을 꼬집어보곤 하잖아."

- p.22 "커피와 우산" -

 

  전작인 "에코의 초상"을 읽었을 때부터 김행숙 시인 속 화자들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편적으로 시만 읽고 보면 불행하고 불길함의 연속이지만, 곱씹어보면 시집 속 인물들은 그 상황을 그럭저럭 괜찮게 넘겼구나 싶습니다. 당장은 우울하지만, 그 끝에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김행숙 시인의 시에는 여러모로 동질감을 느끼며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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