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 시인선 549번 신영배 시인의 "물안경 달밤"입니다.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이후 신영배 시인이 약 3년 만에 새로 출간했던 시집이며, 매우 독창적이고 때로 폭력적인 세상에 환상성을 부여하며 자신만의 울타리를 창조해 냈습니다.
"만나거나 헤어질 때.
눈을 뜨거나 감을 때.
물구두.
안녕.
이곳의 나에게.
당신에게."
- 신영배 -
신영배 시인
-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 2001년 [포에지] 시인 데뷔
- 시집 [기억 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물속의 피아노],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물 모자를 선물할게요]
- 산문집 [물 사물 생활자]
- 깅광협 문학상, 김현 문학 패 수상
"물안경 달밤"
다소 충격적인 시집입니다. 작법이나 표현을 차치하고 드리우는 풍경이 대체로 섬뜩하며 사람에 따라 폭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아름답게 포장하기보다 본질을 유지한 채 그곳에 작은 촛불 하나 놓아두며 위로하는 느낌의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B,24)는 골목에서 당겨졌다 골목이 어긋나고 어긋난 곳에서 그녀는 유기됐다 쓰러진 나를 매일 집으로 데려가는 나의 길, 그 길에서 그녀는 풍겼다
비린내...... 어떤 물체를 강하게 밀어내는
그날 그녀의 몸을 당겼던 물체는 망치, "
- B, 풍기다 中 -
인상에 깊게 남은 구절입니다. 몇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차갑고 서늘한 기분이 들죠. 해당 장면은 정공법으로 서술됐기 때문에 직설적인 풍경과 분위기와 특정 사물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전술했듯, 아름다운 포장 따위는 없습니다.
그만큼 시집 전개의 거시적인 측면을 관통하는 주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배경 없이 가볍게 읽기 시작해 일순간 오싹함이 밀려오는, 일련의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뒤바뀌는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가위질을 할 때마다 가위에서 물송이가 떨어졌다
물송이 물송이 물송이 물송이
자, 가장 아팠던 시간으로 가볼까요?
사라진 그녀와
사라진 사물들과
새빨간 구두가
꿈속으로 들어갔다"
- 미용사 B와 비의 날 中 -
시집에는 '물송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과거의 고통과 눈물이 씨앗처럼 흩뿌려지고 아물어가며 비로소 마음속에 피워내는 한 송이의 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은 그들이 자생하는 꽃이 되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냉혹하지만 늘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봅니다. 하지만 간혹 따뜻한 햇볕 한 줌, 물 한 방울을 건네주기도 하죠.
"물안경 달밤"은 전체적으로 몰입도가 높았던 시집이었습니다. 아픔을 이야기하는 만큼 때로는 다소 격양된 표현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아픔을 어루만지는 방식과 그 치유의 과정에 집중하며 읽어본다면 더욱 와닿는 시집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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